Q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 운동에 영향을 미친 사상과 각각의 구성원, 강조한 목표를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산업혁명의 성공 이후 영국은 번영했지만, 도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은 여전히 사회문제였다. 이때를 배경으로 19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민간부문의 자선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은 개별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많았고, 오히려 빈민의 타락을 가져온다고 일침을 받게 된다. 당시 각종 자선활동이 통일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창설되었다. 그러다보니 활동기관 간에 대립의 형태를 보이기도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었으나, 이들 자선단체들은 빈곤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 채 구호의 중복, 자선의 낭비라는 한계에 봉착했다. 게다가 훈련받지 않은 담당자들에 의해 수행된 자선 때문에 자선에 대한 이미지가 손상되었을 뿐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자선단체들은 여러 문제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지각한 Henry Solly 목사는 1868년 민간자선사업과 공공자선사업활동을 조정할 수 있는 기구인 ‘구걸방지 및 자선조직을 위한 협회’의 설치를 제안했고, 곧 그 이름은 ‘자선조직협회’로 바뀌었다. 이들은 구제신청자들을 받아, 구제중복을 피하고 효율적인 구제활동을 전개했다. 가령 개별사회사업의 기초가 된 가정방문, 면담, 기록, 사례연구 등이 그것이다. 이 협회는 중앙위원회 아래 지역위원회를 두어 조직적 구제와 서비스를 실시하였다. 1869년에 정식으로 발족한 자선조직협회는 자선의 낭비, 구호의 중복을 막고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조직되었으며 구빈행정의 적용을 받지 못했던 많은 빈민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또한 자원봉사자인 우애방문원이 빈민들을 돕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그들의 인격 자체에 감화를 주어 생활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런 노력들은 사회복지사(social worker)의 등장 토대가 되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전문사회사업의 개별사회사업 실천방법으로 발전된다.
한편, 인보관운동은 영국의 도시빈곤문제에 대한 또 다른 접근법으로,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빈민들의 생활개선을 목표로 삼고 시작되었다. 자선조직협회와 비교했을 때, 그들은 빈곤의 이유를 빈민 자체에서 찾던 것에 반해, 인보관운동은 빈곤의 원인이 무직이며, 실직은 도덕성이 아닌 사회 환경과 제도의 결함이라고 보았다. 또 이들은 빈민과 같이 생활하지 않으면 빈민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는 소외계층에 대한 권한부여와 문제해결능력의 인정으로 오늘날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모델이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주민들이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도와야한다던 인보관운동은 구빈이 시혜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복지실천에 영향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이 운동을 통해 현대사회복지실천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시혜 → 상호보완, 빈곤의 원인: 개인 → 사회구조)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보다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훗날 인보관운동은 미국으로 건너가 집단사회사업과 지역사회복지 실천모형으로 발전하게 된다.